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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부터 국토연구원에서 디자인 업무를 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지원하는 족족 붙었던 지난 여름방학과는 달리 이번에는 자리를 구하는 데 꽤나 애를 먹고 있던 중 얻게 된 일이라 꽤나 감사하게 여기며 일하고 있다. 무엇보다 유학이나 대학원 과정은 기본인 고학력자 연구원분들과 함께 일하고 국책기관의 어마무시한 복지를 체험해볼 수 있다는 점은 너무나도 감사한 기회다. 점심시간이 되면 1층에 있는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워낙 퀄리티가 좋아서 인근에 나가볼 생각도 안하고 있었다. 오늘은 같이 일하시는 연구원님이 하루종일 출장을 가셔서 점심시간이 평소보다 여유로웠던 탓에 인근을 구경해보기로 했다.
흔히 세종시 하면 떠올리는 신도시 구역은 강을 사이에 두고 영역이 나뉘어 있는데 나는 강북에서 살아 강남에 있는 국토연구원이 위치한 첫마을-시청 부근을 돌아다녀본 경험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세종시의 가장 큰 문제점인 텅텅 빈 상가 구역은 그래도 상가가 돌아가기는 하는 북쪽 지역과는 달리 몇몇 음식점을 제외하고는 전부 비어 있어 산책하기에 볼거리가 없어 지루하던 참에 건물 구석에 보이는 문고 표시를 보게 되었다.
건물에 들어가 엘레베이터를 타고 4층에 도착하자마자 예상치 못한 모습에 꽤나 당황했다. 외벽에서 본 첫인상은 동네 문고려니 했는데 엘레베이터 문이 열리자 보인 풍경은 해당 층을 전부 문고로 쓰고 있는 모습이었다.
세종시에서 대형 문고점이라고는 교보문고나 옆 건물 지하에 있는 영풍문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비견될만한 크기를 가지고 있어 꽤나 놀랐다. 무엇보다 다이칸야마 T-사이트에 위치한 츠타야 서점의 열풍 전후로 불고 있는 서점의 라이프스타일 공간화를 지방의 독립서점이 멋스럽게 해냈다는 점이 제일 나를 흥분되게 했다.
이 서점을 아르바이트가 끝난 이후에도 자주 찾게 될 거라고 확신했던 순간은 베스트셀러 책장 옆에 위치한 독립출판 매대를 보았을 때다. 지방을 자주 떠돌아다니는 군가족 특성상 주로 서울에 위치한 독립서점과, 그들이 소개해주는 독립출판물을 접할 수 없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었는데 바라던 장소를 우연찮게 산책하다 발견하게 되다니.
공간의 다양함도 구경하는 재미를 더해줬는데 앉아서 필사할 수 있는 공간, 예약을 하면 회의할 수 있는 공간, 청음을 할 수 있도록 CD 플레이어와 헤드폰을 구비해둔 공간(LP는 무리였나보다)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서재 사이사이마다 배치해두었다. 일부러 다음에 왔을 때도 신선한 맛을 즐기기 위해 엘레베이터 기준 우측 공간을 일부러 구경하지 않은 채 아껴두었는데 계산할 때 슬쩍 보았을 때 프라모델 점인 하비 팩토리가 입점해 있고 문고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카페가 있는 듯 보였다.
단지 이색적인 관심을 끌기 위한 공간을 남발이 아니라 서재 분류나 책 선정도 매우 마음에 들었는데 그렇게 실물로 가지고 싶었던 매거진 B와 군대에서 리디셀렉트로 자주 읽곤 했던 아무튼, 시리즈를 이곳에서 한방에 구할 수 있었다.
또 재밌었던 점은 위사진처럼 문제집 코너가 서재 제일 구석부근에 위치해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보통의 서점들은 매출의 이유로 접근성이 제일 좋은 곳에 학습 관련 책들을 위치하곤 하는데 꾸메문고가 생각하는 서점의 방향성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의 배치였다.
아무튼, 하루키 책과 매거진 B 츠타야 특집 한 권과 아마 서울로 학교에 다니게 될 동생에게 촌놈소리 듣지말라고 줄 선물로 매거진 B 서울 편을 골라 엘레베이터 앞에 있는 셀프 포장 코너에서 열심히 스카치 테이프로 둘둘 말아 왔다. 몇주간 내 점심시간은 이 곳에서 보내게 될 듯하다. 부디 오래오래 영업해주길.